최경주가 말하는 '나의 골프, 나의 신앙'···'제 마음을 비우고 치게 해 주십시오'
프로골퍼 최경주(38) 선수가 14일 갑자기 귀국했다. 그는 이날 밤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온누리교회 CEO포럼에서 '나의 골프 나의 신앙'을 털어놓았다. 그를 만났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손과 다리가 덜덜덜 떨린다는 마지막 라운드의 승부처 최 선수는 그때마다 자신이 올렸던 '기도'를 이날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리고 "기도는 나의 힘"이라고 덧붙였다. 이튿날 최 선수는 타이거 우즈가 주최하는 쉐브론월드챌린지 대회(18일 개막)에 참가하기 위해 곧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골프는 내 운명 14일 오후 8시 최경주 선수가 단상에 올랐다. 참석자 700여 명의 눈길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제가 지금껏 했던 연습량보다 여러분이 제게 주신 사랑이 더 크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골프는 내 운명'이 된 사연을 밝혔다. 최 선수는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로 좌중을 웃겼다. "중학생 때였죠. 입학식 날 '역도 할 사람 앞으로 나와!'하더군요. 그래서 나갔죠. 지원자는 모두 12명이었어요. 선생님이 '이쪽에 6명 저쪽에 6명씩 서!'라고 지시했죠. 그래서 한쪽에 섰죠. 그랬더니 '이쪽은 골프부 저쪽은 역도부!'하고 정하더군요. 저는 골프부였죠." #비움의 기도 2000년 PGA투어에 데뷔했던 최경주는 그해 성적이 나빠 또다시 테스트(퀼리파잉스쿨)를 봐야했다. 출전자는 많았다. 최경주는 150명 중 35등 안에 들어야 했다. 그래야 PGA투어에서 뛸 수 있는 티켓을 딸 수가 있었다. 티켓이 없으면 최경주의 'PGA 꿈'은 무산될 판이었다. 한국으로 영영 귀국해야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마지막 날 하루가 남았죠. 그때까지 48위더군요. 순위별로 대충 스코어를 세 봤죠. 다음날에 4언더파(-4타)를 쳐야 하더군요." 최경주는 아내와 함께 가까운 한인교회에 갔다. 그리고 기도를 했다. 각별한 기도였다. 그는 "하나님 제가 4언더를 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님 제가 타수를 생각하며 치지 말게 하시고 제 마음을 비우고 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채움의 기도'가 아니었다. 반대로 '비움의 기도'였다. 이튿날 그는 마지막 홀에서 3m 퍼팅을 남겨놓았다. 공이 들어가면 '4언더'였다. "퍼팅을 하려는데 손이 '덜덜덜' 떨리데요. 멈출 생각을 않는 거예요. 이 상태에선 절대 공이 안 들어가겠다 싶었죠." 최경주는 퍼팅 자세를 풀었다. 그리고 어젯밤의 기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섰다. "그때 떨리던 손이 '딱' 멈추데요." 거짓말처럼 긴장이 멈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은 홀로 들어갔다. 그는 'PGA 티켓'을 땄다. "그 퍼팅이 안 들어갔으면 '지금의 최경주'는 없습니다." #잡초와 계단 그리고 빈 잔 이날 무대 위에서 최 선수는 노래도 불렀다. '빈 잔'이란 가요였다. "그대의 싸늘한 눈가에 고이는 이슬이 아름다워~." 선곡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는 세 가지 모토가 있다고 말했다. 다름 아닌 잡초와 계단 그리고 빈 잔이었다. "'잡초'는 강한 정신이죠. 온실에서 자란 식물은 바람이 불면 자빠지죠. 잡초는 절대 자빠지지 않습니다. '계단'은 겸손이죠. 운동선수는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죠. 저라고 늘 잘되겠어요? 철야 기도를 하고 대회에 나가도 안 될 때가 있죠. 그래서 '계단'이 중요합니다. 안될 때는 한 계단 올라가고 잘될 때는 한 계단 내려오는 겁니다. 신앙을 통한 내 마음의 낮아짐과 가난함이 그걸 가능하게 합니다." 그는 '빈 잔'의 이유도 설명했다. "내가 '빈 잔'이 될 때 새로운 게 채워지더군요. 신앙도 그렇고 골프도 그렇대요. 낡은 기술을 비울 때 비로소 새로운 기술을 채울 수 있더군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지난해 최 선수는 PGA투어 AT&T내셔널 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당시의 '체험'을 얘기했다. "3라운드가 끝났죠. 마지막 라운드만 남았어요. 저는 선두에 2타차로 뒤지고 있었죠." 그날 밤 숙소에서 최 선수에게 아내가 성경을 내밀었다. "이 구절을 외우고 내일 대회에 나가봐요." '요한복음 15장16절'이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제가 암기는 진짜 못하거든요." 최 선수는 자기 전에 2시간 동안 그 구절을 외웠다. 호텔방을 왔다갔다하면서 말이다. 다음날 아침에 확인도 했다. "외워지데요." 연습장에 나가서 공을 치면서도 확인했다. "외워지데요." 그리고 대회에 나갔다. 최 선수는 티잉 그라운드에 섰다. "그런데 긴장을 하니까 외운 게 싹 없어지데요. '너희가'라는 첫 단어만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 다음이 기억이 안 나요. 지체할 수는 없으니 일단 공을 쳤죠." 그는 공까지 걸어가면서도 '성경 구절'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나요." 2번 홀도 3번 홀도 4번 홀도 그랬다. 최 선수는 스코어카드 기록을 아예 캐디에게 맡겼다. 그리고 '성경 구절'만 생각했다. 파인지 보기인지도 모르고 계속 갔다. "'너희가' 다음 구절이 뭔가 '너희가' 다음 구절이 뭔가.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어요." 그렇게 14번 홀까지 갔다. "14번 홀에서 파를 했죠. 그리고 15번 홀로 돌아설 때 전광판을 봤어요. 제 이름이 제일 위에 올라가 있대요. '이렇게 치고 있는데도 선두구나' 싶었죠. 그리고 15번 홀에서 티샷을 했어요. 타석에서 내려오는데 거짓말처럼 다음 구절이 터지데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하며 줄줄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끝까지 생각이 나는 겁니다." 17번 홀에서 '그림 같은 벙커샷'이 홀인한 것도 이 대회였다. 결국 최 선수는 우승을 차지했다. #기도를 통한 낮아짐 최경주 선수는 날 때부터 크리스천은 아니었다. "1993년에 아내를 처음 만났죠. 교회에 안 가면 데이트를 안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형식적으로 따라다녔죠." 그러다 99년에 온누리교회에서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최 선수는 자신의 믿음은 '단순한 믿음'이라면서 '스프링'을 보라고 했다. "스프링은 늘어났다가 '탁' 놓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죠.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스프링은 이제 쓸모가 없어진 겁니다. 내가 기분이 나빴든 좋았든 항상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 자신을 낮추면서 말이죠." 프로 골퍼로선 '마인드 컨트롤'이고 신앙인으로선 '마음의 평안'이었다. ◆최경주의 기도와 말말말 “골프는 돌아가야 할 때 꼭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지 못하면 꼭 (직접 겨냥해) 쏘게 된다. 쏘면 망가진다. 돌 땐 돌고, 쏠 때 쏴야 한다.” -14일 골프에서 ‘마음 비움’은 무척 중요하다며.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미국에 가서 힘들 때 가장 의지했던 성경 구절이라며. “하나님, 이 거대 선수들 속에서 단 한 홀만이라도 먹게 해 주십시오.” -지난 1일 우승한 LG스킨스 대회를 앞두고 기도. 그는 여러 홀에서 이겼고 결국 우승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더라. ‘네가 이걸 이기지 못하면 다른 어떤 대회에서도 이길 수가 없다’는.” -지난해 우승한 PGA투어 메모리얼토너먼트 마지막 라운드에서 경기 도중 무심코 1위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굉장히 떨리기 시작했다며. “나눔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나눔을 통해 제가 더 낮아지고, 더 가난해집니다.” -지난해 설립한 ‘최경주 재단’을 통해 어려운 여건의 청소년 후원과 주니어 골퍼 육성, 기부문화 확산 등을 계속 이어가겠다며. 백성호 기자